Blah

Blah-Blah 2014. 9. 3. 02:15

오래 전, '홈피'라고 불리던 곳에다가 했던 말이 있다. '홈페이지는 감정의 하수구인 것 같다-'

해결책도 없고 답답한 이야기인데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것들, 내게는 큰 걱정거리지만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 사실 이런 것들은 그냥 아무데나 속시원히 내뱉어 버리면 끝나는 걱정거리에 불과하다. 어디에 말한다한들 세상은 전혀 달라지는게 없는데도, 꺼내놓음으로써 내 마음이 좀더 편하고 시원해질 수 있는 그런 것들 말이다.

사전적인 정의 그대로 'Blah : 어쩌고저쩌고(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없는 말을 대신하는 표현)' 횡설수설 하는 말들을 내뱉고 묻어버리는 곳이 내 홈페이지였다. 내 이름을 딴 도메인으로 시작했던 그런 홈페이지는 결국 자신에게 맞는 blah 라는 이름을 찾았고, 아무 생각 아무 이야기나 횡설수설 써댈 수 있는 Blah-Blah 카테고리가 제일 애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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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러운 주제로 떠들던 내 홈페이지가 'Blog' 라는 이름을 달게 될면서, 솔직하고 우울한 마음을 담는 홈페이지도 아니고, 좋은 모습만 늘어놓는 SNS도 아니고, 지식 전달에 치중하는 칼럼도 아닌게- 참 본질을 알 수 없는 짬뽕 국물이 되어버렸다.

어찌 생각하면 짬뽕이라는 말이 블로그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말이 아닐까. 한동안 자중하던 중- 오랜만에 눈치 안보고 내게 있어서 중요하고 솔직한 생각들을 말해볼란다. 블로그 친구분께서 'Blah 카테고리 내용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를 했던게 슬며시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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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정말 너무나도 사랑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만큼 크냐면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녀석임에도 잘못을 인정하고 분한 마음이 없이 금새 잊을 수 있다는 점. 내게 쓰는 시간과 돈은 너무나 아까워하는 구두쇠가 그녀에게 쓰는 시간과 돈은 전혀 아깝지가 않다는 점. 틈만나면 '내가 먼저 죽었을 때 죽도록 슬퍼할 그 사람'과 '그 사람이 먼저 죽었을 때 죽도록 슬퍼하게될 나' 의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는 점. 이걸 해주면 어떨까 저걸 해주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늘 그녀가 좋아하는 혹은 필요한 물건 구경을 하고 다니는 점. 한바탕 싸우고 나면 서운한 감정은 금새 지나가버리고 속상해하고 있을 그녀에 대한 미안한 생각과 잠은 잘 들었을까 하는 걱정스런 감정들이 쏟아져나온다는 점. 사람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렇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도.. 아.. 감정이라는건- 참 말로 풀어놓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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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다른 건 다 견뎌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상처 받으면 그게 참을 수 없을만큼 너무나 속상하고 가슴아프다는 점.

'정말 진심으로 너무나 사랑하는데-' 라는 생각에 서운함이 앞서서 결코 지려고 하지 않는다. 마치 패배를 인정하는게, 내 사랑이 진짜 사랑이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늘 복잡한 감정으로 다툰다. 하지만 서운한 감정은 미안한 감정에게 쉽게 백기를 들고 만다. 끝까지 살아남은 알량한 자존심과 억울함이 '하지만, 하지만' 하는 말들로 변명해보지만, 이내 결국 미안한 생각이 앞선다.

그래서 오늘도 이제서야 미안하다. 이것까지 해서 두개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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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공연 준비를 하던 시절, '나에 대해서 말하기'라는 주제를 놓고 첫타자였던 나는 생뚱맞게 '진짜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진솔하게 고백하며 눈물을 터뜨렸고, 내 덕에 모든 배우들이 뜬금없는 자아 성찰을 하며 눈물바다가 되었던 적이 있다. 내 생각에 나의 진짜 용기는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사실 술을 끊은 뒤로는 용기가 제대로 나질 않아서 블로그를 감정의 출구로 이용할 수가 없었다. 감정적인 글들도 뜸해졌었다. 내 마음도 건드리지 못하면서 글을 쓰는게 어렵게만 느껴졌고, 용기도 없어졌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럴 때면 용기가 그리워서인지 술이 무척 땡긴다.

근데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자니 술이 없이도 지금 이렇게 헛소리를 끄적일 수 있다니 '술'이라는게 핑계에 불과했나 싶기도 하다. 또 생각해보면 내가 상상하고 있는 내 옛 시절 모습이 실제와는 많이 달랐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오래전 멀쩡한 정신으로 써질러놓았던 글들을 떠올리자니.. 원래 난 용기가 대단하고 뻔뻔스런 녀석이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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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건지 나도 참 답답하지만, 마음만 전해지면 뭐- 됐다.

마음은 다 통한다고들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 꾸미지 않은 마음이 담긴 말과 행동이 통하는 것이다.

가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애정만큼 서로에게 욕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부족한 표현도 지나친 욕심도 잘못된 건 아니다. 이것 역시 그 사람의 꾸미지 않은 마음일 뿐이다. 그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서로에게 맞춰가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통하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고, 오해라는 말도 틀렸다. 그래서 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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