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듯이 바쁜 하루가 지나가다.

Diary 2007. 10. 5. 02:34

하루 종일 뛰어다닌 기억 밖에 없다.
안과 협진 푸시, 핵의학과 판독 푸시, MRI 촬영 푸시, 심전도 푸시, 마취과 푸시... 온갖 푸시들을 다 하고 다니면서 병원 곳곳을 신나게 달렸고, 그 외에도 수많은 자잘한 일들을 하러 이곳 저곳 열심히 뛰어다녔다. 모든 일들이 당장에 빨리 끝내지 않으면 빵구가 나버리는 일이라서 분초를 다투며 서둘렀다. 그래서 저녁 Monthly 컨펌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몸에서 땀이 마를 새가 없었다.

뛸 때마다 느껴지는 땀내음에 - 내 노력이 배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뿌듯한 느낌도 간혹 들었지만 - 나중에 가서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당장에라도 땀냄새 배인 웃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시원하게 샤워를 한 뒤, 개운한 기분으로 두 팔다리를 주-욱 뻗고 침대에 드러 눕고 싶었다.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던 건, 정신 없고 힘든 와중에도 너무 짜증스럽고 화가 나서 입 밖으로 욕이 막 튀어나오려는 미쳐버릴 듯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는 않았다는 것.

"어제는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환자 한 분이 Sepsis에 빠지시는 바람에 조금도 쉬지 못하고, Q1 으로 혼자 스케쥴을 돌고, 게다가 중간중간에는 어찌나 이것 저것 일들이 많이 생기는지 정말 정신없이 일을 했지.. 물론 마무리 지어야 할 큼직한 일은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상태에서 말야. 여지껏 환자가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는데.. 왠만해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고 느꼈던 적이 없었는데.."

밥도 제대로 못챙겨 먹으면서 죽도록 일을 해서, 레지던트 선생님들도 무리일거라고 생각하고도 시킨 일을 다 해냈다. 힘들었던 건 모두 잊고선, 스스로에게 참 뿌듯하고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칭찬은 커녕 갑자기 벌어진 어떻게도 손쓸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로 인해서 되려 혼구멍이 나고 말았다. 어떻게든 혼날 수 밖에 없는 일들.. 그 때의 서글픔, 서운함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눈물이 찔끔 나더라. 혹시라도 누가 볼까봐 인턴방 밖으로 나가서 창 밖을 내다봤어. 연락할 사람, 힘을 얻을 사람을 곰곰히 생각해보는데 아무도 떠오르질 않는거야...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왜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나. 정말 억울하더라고.. 나중에는 서러움에 슬픈게 아니라, 너무나 억울해서 슬프더라.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난 그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산 것 밖에는 없는데..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

내가 힘들 때에는, 내가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내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너무나도 가슴 깊이 느꼈다. '힘들 때는 자기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게 사람인가봐-' 참 가슴 아픈 생각이다. 하지만, 사실 호의라는 것도 그렇고, 애정이라는 것도 그렇고.. 내가 베풀고선 다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면 그건 이미 호의도 애정도 아닌 걸. 아무래도 내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사랑이든, 친구든... 내가 힘이 되어 주기 위해서 노력하기에는 많이 지쳐버린 것 같아..

그림자 짙게 드리워진, 하늘. 사실은.. 큰 희망은 없는 것 같다.
오늘은 정말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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