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집단 휴진에 대한, 변론.

Blog 2014. 3. 18. 22:57

이번 의료 투쟁에 대해서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는 말씀에 대해 내가 달게 된 답변.

남의 블로그 댓글에 이런 장문을 쓴다는 것도 참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평소 생각도 깊으시고 블로거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으신 분인데 정말 당혹스럽고 안타까운 글을 남기셔서.. 죄송스러운 답글을 달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오해는 사실 상, 그릇된 언론 보도를 접하는 많은 분들이 가질 수 있을 만한 내용이라서 내 블로그에도 퍼왔다.

이번 의-정 협의안 관련해서도, (너무 신기하게도) 처음에 떴던 다양한 의견의 수많은 글들을 다 물리치고, 의사 단체를 비난하고 헐뜯는 글들이 모든 상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거의 상업 포탈로 전락해버린 '네이버'의 경우 더 심각하다.

 

이하부터 내가 달았던 답변이다.

참고로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항변을 하고, 누명을 벗기 위해서 노력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

의료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해두자. 그리고 정확한 사실을 모르면서 이슈 타기에 급급한 나머지, 정부측 언론이 떠드는 잘못된 소문을 그대로 믿고, 이를 또 다른 잘못된 주장으로 재생산해내는 '1인 미디어'들에 대한 분개이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 근거를 제시할 경우 곧바로 수정하고 사과할 생각이다. 그리고 의료 투쟁이 실패할 경우, 양심을 지키기 위해 한 마지막 노력이 정말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이 글과 해당 답글은 자체 삭제 하겠다.

 

 

기득권층에 대한 편견이, 의사들이 여론을 이끌어내는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지요.
게다가 의사가 비판 받아야 하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언론들이 앞다퉈서 매도하고 (의사 사회도 타직종 사회와 마찬가지로 부도덕적인 구성원 소수는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막상 정부나 정부가 구성한 의료정책이 비난 받아야 마땅한 사건이나, 의사가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기사를 찾기가 힘들다다는 점이 여론을 이끌기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가려진 정보에 눈이 먼 국민' 이라는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이번 투쟁을 통해서 의사들이 노력하는 것도 언론에 의해서 가려진 의료 현실에 대해 국민의 눈을 띄우려는 것도 있습니다.
이번 의-정 협의안 관련해서도, 정부가 하는 언론 플레이가 극에 달했습니다. 어디를 찾아봐도, 어떤 신문 기사에서도 영악한 여론 몰이 글들 뿐입니다. 의사들이 마치 원격진료며 의료 영리화를 찬성하고 합의를 도출한 듯이 써놨군요.. 정말 우리나라, 무서운 곳입니다.

 

의사에 대한 비판적인 글이 많지만, 그 편견으로 인한 오해가 많아서 일일히 해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정치 9단 정부의 언론 플레이는 정말 치가 떨릴 정도로 비열하고 무섭습니다.

 

블로그 이웃으로서 제가 변론을 드리자면,

 

1. 이전 2007년 세브란스 병원 파업 사태를 찾아보세요. 병원 내 의사를 제외한 의료 관련 종사자들이 임금 인상을 놓고 거의 전원 파업한 사태입니다. 타 직종 관계자들은 환자에 대한 책임이 없기에 대부분 뛰쳐나갔고, 그 빈자리를 의사들이 모두 메꾸었습니다. 정말.. 거짓말 안하고 병원 거의 모든 업무를 다했습니다. (노조에 참여 안한 간호사 몇 분만이 남아서 중환자실, 병실, 응급실을 지켰죠.) 그리고 감당 안되는 환자들은 타 병원으로 서둘러 전원하는 등의 대책을 세워 환자에 대한 책임을 의사만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어떤 사회에든 존재하는 불순한 사람들 비율 정도로 비윤리적인 의료인이 있겠지만, 대다수 의사는 사람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고 윤리에 대한 교육을 주구장창 받아서 그런지 상당히 윤리적입니다. 게다가 의사도 사람이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라는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시는 분이라면 다 아실 겁니다. 심지어는 노인환자분들이나 장애 환자분들을 보면, 치료비때문에 부모 자식 저버리는 사람들보다 의사가 훨씬더 걱정하고 챙겨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옛날에 엄청 감동적으로 찍었던 의료 휴먼 다큐멘터리에 카메라 전원 꺼지면 집에 가버리던 아들래미가 생각나네요.
이번 휴진도 마찬가지 성격입니다.
전공의들이 휴업을 하니까, 당직 설 시기는 넘긴 교수님들이 대신 당직을 서러 병원으로 달려나왔습니다. 개인 병원이 문닫아서 진료 불편을 만든게 문제라구요? 정부가 원격 진료를 시작하면 말씀하신 지방 도시 개인 병원의 대다수가 진짜로 문을 닫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 이틀 문닫는게 불편한 국민들이 양심적인 의사를 지지 안하면 누가 지지할까요. 원격진료로 진료를 보면 되지 않냐구요? 원격진료 지금도 가능합니다. 대충 전화로 이야기 나누고, 폰카로 사진찍어서 보내면 되지 않겠어요? 근데 그렇게 안하는 이유가 뭘까요. 오히려 병원 넓히지 않고도 환자 더 많이 받아볼 수 있고, 병원 문 안열고도 24시간 진료가 가능해지는 그 좋은 돈벌이 수단을 왜 안하는걸까요. 정상적인 의료가 행해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 의료공백에 있어서는, 응급질환 아닌 일반 질환 환자들은 그냥 늦어지는 진료로 인해 불편만 겪을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불편도 싫으시다면, 적극적으로 정부 정책을 반대하셔야 합니다. 의료 영리화가 추진되면, 미국 시스템처럼 몇개월을 기다려도 전문의 얼굴 보기조차 쉽지 않아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게다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이 의료 공백시 제일 문제가 된다고 말씀하시지만, 의료 투쟁에서 이런 필수적인 파트에 대해서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게끔 합니다. 한번도 응급실 중환자실을 의사가 비운적은 없습니다. 투쟁에 참여하는 어느 의사도 그럴 생각은 결코 없고요. 하지만 현재 우리 나라 의료 수가의 비정상적인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지방 많은 병원들은 이미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축소시키고 문을 닫고 있습니다. 응급실 중환자실 공백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도대체 의료 투쟁이 문제인가요 아니면 의료 수가 정책이 문제인가요..

 

2. 의사들한테 손해보는 장사 하기를 강요하고, 희생과 봉사하기를 당연하다고 여기는 건,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더욱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본인이 평생 무료 봉사 노동하면서 살 생각이 아니신 분들이라면 의사들이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사기를 쳐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11년간 노력해서 공부한 결과 전문 자격증을 따고, 열심히 일해서 벌게 된 돈인데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그리고 잘 모르시고 계시는 사실이, 기득권 돈벌이 관련해서는 오히려 정부의 정책들이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지요. 원가 70프로만 돈을 받으면서 장사하라고 하면, 망하지 않기 위해선 다른 돈벌이 수단이 필요합니다. 바로 비보험 진료나, 진료 외 수익을 이용해서 손해보는 부분을 채우고 운영비를 마련하지요. 근데 이게 정상적인가요? 의사들이 원하는 건, 수익의 극대화가 아닙니다. 수입이 지금보다 땡전 한 푼 안올라도 좋으니까, 제발 정상적으로 진료만보면서 살게 해달라는 겁니다. 의료 수가로 유지가 안되니까 병원에서는 돈을 벌어오라고 압박합니다. 그러면 의사가 무슨 영업 뛰듯이 이 치료가 좋다, 저 치료가 좋다고 반강제로 설명하며 반드시 필요하지 않는 치료를 권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되버립니다.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는 다른 단체라고 늘 이야기 하지요. 대부분의 경우, 의사 협회는 그냥 정상적인 진료만으로 돈을 벌기를 원하고 있기에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정상적인 진료란 환자를 15분 이상 충분한 시간동안 진료하고 설명도 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며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최신의 치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것 이야기 합니다. 선진 의료 제도는 의사만 노력한다고 만들어질 수 있는게 아닙니다.) , 병원 협회는 사업자들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제시하는 진료 외 돈벌이 수단이 지금보다 매력적이라면 정책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제시하는 의료 정책이 추진 되었을 때, 지방 개인 병원들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이지, 정말 의사가 수입이 줄어들어서 쫄딱 망한다는 이야기 일까요? 의료는 무서운게, 의사 환자간의 지식의 격차로 인해 자유자재로 수요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의료 윤리를 엄청나게 강조하고 새내기 의사의 윤리 교육에 힘쓰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이 의사가 아닌, 환자를 정말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의 손에 주어진다면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병원 수입을 무작정 늘릴테고, 이 과정에서 의사를 영업직으로 써먹는 병원에서 의사에게 돈을 적게 주진 않겠지요. (지금도 사무장들이 운영하는 돈벌이 위주의 병원에서의 의사 수입은, 다른 의사들보다 훨씬 높다는 현실이 그 증거입니다.)
환자 진료에 책임이 없는 약사만 해도, 이미 임의 싸구려약 대체 조제에 80프로 이상의 약국이 가담했고, 불법 중국약 판매 등등 (비록 언론에는 적게 알려지고 묻혔지만)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문제없이 지내고 있다는 게 앞으로 있을 무서운 현실을 증명해주지요.

 

3. 황당한 의료사고가 왜 일어날까요? 물론 의사도 사람이기에 몰라서 하는 실수도 있을테고, 정말 잘못해서 실수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세계 최고의 농구선수라고 해도 모든 슛을 백프로 성공시키는 건 아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과도한 업무로 너무나 피곤해서 하는 실수의 비율이 훨씬 많습니다. 정상적인 의료인이라면 '모르는 진료' 에 대해서 다른 의료진에게 의뢰할 수 있는 (동시에 일거리도 넘길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 있는데, 왜 모르는 질환을 가지고 굳이 기어코 보겠습니까. 진료 수입이래야 높게 잡아봤자 2-3만원인데, 혹시 문제라도 일으키면 수천만원 이상을 물어야 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누가 진료를 보겠습니까.. 게다가 과도한 업무를 하는 의료인의 실수의 방지를 위해 보조 인력의 도움과 확인 절차를 필요로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환자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은 없습니다.
저도 전공의 시절에 '술먹다가 이마가 찢어진 환자'가 새벽 4시에 찾아왔는데, 정말 밤새 일하다가 4시 다되서 겨우 잠들려던 중 환자를 받고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짜내서 꼬매주고, 새벽 6시가 되어 다음날 일거리를 바로 시작했던 적이 있습니다. 근데 나중에 외래에서 엑스레이를 보니 골절이 동반되어 있더군요, 평소에는 거의 세트처럼 당연히 연관되서 생각되던게 하루에 1-2시간 자는 생활을 며칠 하다보니 얼이 빠져서 머리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더군요. 다행히 심한 골절이 아니라서 문제도 없었고 환자도 컴플레인 없이 납득했지만, 교수님한테 한 꾸중 들었었죠.
자 여기서, 왜 이렇게 무리하게 일을 하게 될까요. 의사 수는 많다는데 대체 이유가 뭘까요. 그 이유는 불필요한 환자까지 최대한 진료를 보게끔 유도하는 병원 유지를 위한 시스템 (저수가 정책 때문이겠죠), 그리고 큰병원으로 모든 환자가 몰리는 환자의 불균형 (원격 의료 시행하면 더 심해지겠죠) 이 그 이유입니다. 병원에서는 많은 환자를 받아야 수입이 유지되고, 그 덕에 교수진을은 환자 압박에 시달리며, 병원에서 오전 외래에 환자 200명을 잡아 놓으면, 2-3분만에 환자 한 명을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수입이 좋은 몇개 과들은 입원 환자가 60-70명이 넘어가고, 환자 한번 쭉 둘러보는 이동 시간만해도 2시간이 넘는데, 회진 중에 설명 다하고 이야기까지 나눈다면 외래 진료와 수술, 게다가 의대생 교육, 연구 학술 활동까지 병행한다는 건 꿈도 못꿉니다.
그리고 수입 위주의 병원들은 수입과 관련되지 않은 항목들은 철저하게 최소화 시키기 때문에, 의료 사고 방지를 위해 필수적인 과정도 생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설마 의료 사고에 책임을 져야만 하는 의사가 본인 자유 의지로 이러한 중요한 과정을 생략하겠습니까..

 

더 할말이 많지만 이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의사들이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도 이제 막바지로 가는 것 같군요. 저는 성형외과 의사라 사실 보험 의료 수가와는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같은 의사로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지지하고 있는 바입니다. 이번 노력이 물거품 되면 정부 정책대로 의료 상업화는 착착 진행이 될거고, 대기업과 정부의 합작, 그리고 영리 추구 대규모 병원들이 난립하면서, 정상적인 의료는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피해자는 누구겠습니까. 의사도 정부도 대기업도 아닙니다. 그리고 의사들이 이렇게 목에 핏대 세워가며 반대했는데도 불구, 의사의 요구사항이 좌절되고 정부 뜻대로 진행되어서 생기게 될 의료 문제 조차도 '의료=의사' 라는 공식에 맞춰서 '의사 나쁜놈들' 로 끝나게 되겠지요.. 참 우습죠.


이번 10일 휴진 사태에 비보험과 병원들과 사무장 병원들은 거의 전부 문을 열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양심적인 의료인으로서 의료 투쟁에 참여하는 친구 선후배들을 가까운 곳에서 보고 있는 입장에서, 가려진 눈을 채 풀지도 않고 무작정 칼을 휘둘러대는 인터넷 글들 정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공감 버튼을 눌러주세요.
작은 흔적을 남겨주세요 :)
블로거에게 큰 보람을 주는
'돈 안드는 구독료'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