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Blog 2014. 1. 5. 13:53

 

 

안녕들 하십니까?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자본에 저항한 파업은 모두 불법이라 규정되니까요.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입니다.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위 글은 철도 민영화 관련하여 파업한 노동자들이 대량 직위해제 당하는 사건 이후, 고려대학교 학생이 교내에 붙인 대자보의 내용이다. 정말 안녕하지 못한 요즘 사회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너무 안녕들 하시다. 진정 다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의 요지는 '정치, 사회에 관심을 갖자' 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국정원 선거 개입이며 부정선거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론이나 국민들 모두 인터넷, 술자리에서나 떠들뿐, 일상에 돌아오면 - 자기 생활에 바빠서인지 아니면 자기와 관계 없다고 생각하는 이기심의 발로인지 -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지곤 한다. (막상 외국 기자들이 우리나라의 부정 선거개입 관련 보도하는 기사를 보면,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인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우리 국민의 대다수가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약자인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인 파업이 범죄로 취급되어 강제 직위해제에 언론플레이를 통해 나쁜 범죄자 처럼 매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은 기껏해야 '쯧쯧' 혀차는 소리만 할뿐, 안일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살 뿐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정부의 개이자 돈에 목매달고 있는, 쓰레기 같은 우리나라 언론도 문제겠지만. 지금이 60-70년대도 아니고,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한다해도 정보 매체의 발달 덕에 수많은 경로를 통해서 관련 정보들이 봇물 터지듯이 돌아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는 요즘 젊은 사람들도 참 문제다.

 

30 중반이 되어가는 나도, 유치원 다닐 적에 건대에서 최루탄을 쏘아가며 시위 진압을 하던 모습을 곁눈으로 보기만 했을 뿐, 사회 운동에 대한 기억이 전무하다. (등록금 투쟁 하는 모습만 지겹게 봐왔다 ;;)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부에게 의사를 전달한다는게 어떤 모습인지 감이 안잡힌다.

정부가 어떤 몹쓸 짓거리를 한다고 해도, 혹이라도 나섰다가 피해볼까봐 남들 나서기만 숨죽이고 지켜보는 요즘 세태는 가끔 정말 짜증이 날 정도이다. 거기에다가 우리나라 국민의 그 유명한 '냄비 근성' 덕분에 수천억 수조의 예산 피해를 입힌 대통령이든, 국민과의 소통을 슬로건으로 내걸고선 소통을 단절시키고 막무가내 정치를 하고 있는 대통령이든, 잠깐 부글부글 끓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리고 각자 제 갈길을 간다.

광우병 사태로 미쳐 날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제 다시 갈비탕 척수까지 잘 발라먹고, 한미 FTA, 주한 미군 효선 미선, 국민 연금, 의약분업, 촛불 집회, 불합리한 스포츠 연맹 관련 여러 사건들, 정말 수많은 말도 안되는 사건들이 채 몇일도 가지 않는 냄비 근성과 인터넷 댓글 놀이로 그친 채 쉽게 잊혀졌고. 큰 죄를 지은 수많은 유명인들이 냄비 근성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지은 죄를 감추고는 다시 유명인 행세를 하며 돈을 벌고 있다.

 

요즘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정말 말도 안되는 사건들이 정말 내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들일까.

 

내 직업인 의료와 관련해서도, 요즘 벌어지고 있는 말도 안되는 수가 체제, 강제적인 국가 의료보험과 관련된 보건복지부 심평원의 왕 놀이, 잘못 되어 돌아가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언론 플레이로 덮어버리고 있는 정부, 그리고 이에 놀아나는 국민들.

건강 보험 공단에서 (의료비로서 국민과 의사, 의료 관계자들을 위해 당연히 지출해야만 하는) 수조 수천억에 해당하는 예산을 남겼다고 자랑스럽게 떠드는 사실을 보면 치가 떨리고, 이를 좋다고 호응해주는 국민들을 보면 무섭다. 정작 써야만 할 곳에 돈을 안쓰려고 몸부림 치는 덕에 국민들이 의료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피해를 보고, 열심히 진료를 하고도 병원은 망해가는 (결국 꼭 필요한 과들의 몰락을 시작으로 전체적인 의료 붕괴로 이어지는) 엄청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그 증거인데도... 뭐가 잘났다고 그렇게 좋다고 홍보하는지.

그 덕에, 최신 치료 최신 검사는 적용을 시킬수가 없다. 의사로서 치료할 수 있다는 걸, 치료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치료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얼마나 죄스러운지 아나. 정부의 의료 통제와 의료비 절감 정책은 국민에게 엄청난 불행으로 다가갈 것이다. 막상 그런 정책을 시행하는 고위층 작자들은 뒷돈 줘가면서 자기들이 통제해오던 최신 치료를 다 받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모른다. 의사들이 아무리 국민 건강을 위한다고 시위해봤자 자기 밥그릇 챙기려는 속셈이라며 언론플레이에 놀아난다.

약사는 대체 얼마나 주요 보직에 자리를 많이 잡은건지. 국민 건강에 엄청난 해를 끼칠 잘못들을 저지르고도 (예를 들면, 통보도 없이 싸구려 약으로 대체 조제하며 리베이트를 받아왔고, 그것도 모자라 이젠 정부로부터 인센티브를 받는 말도 안되는 제도까지 만들고.. 불법 스테로이드나 중국산 근거없는 약품 불법 유통과 같은 범죄 행위를 십수년간 저지르고도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 짓는..) 어떤 수를 쓴 건지 아무렇지도 않게 죄를 감추고 사건을 마무리 지어버렸다.

 

의사가 아무리 국민 건강을 위해서 말도 안되는 우리나라 의료 상황을 열심히 떠들어도 언론 통제 때문인지 알려지질 않는다. 국민이 걱정하는 의료 민영화는 이미 시작되었는데 이제와서 걱정된다며 벌벌벌 떨고 있다 - 물론 이 또한 냄비 근성 덕에 곧 잊혀지겠지만..

참 걱정되는 상황 속에서도 모두 안녕들하게 아무 걱정 관심 없이 각자 열심히들 자기 혼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모든 국민이 계속 이렇게 안녕하게 살다가는, 정말 도저히 안녕하게 살 수 없는 무서운 세상이 올지 모를 일이다.

 

돈이 없어서 병원을 못가는 상황, 그리고 돈이 있어도 치료를 못받는 상황. 조만간 다가올 우리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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