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에의 유예 기간.

Thought 2009. 6. 28. 14:49

난 지금 상실을 향한 유예 기간을 살고 있다.  내 손에 쥐고 있던 끈을 하나 둘 놓아버리고 있다는 게 그 증거이다.

 

나라는 작은 존재의 멀어짐이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없이 다가간다고 할지라도, 그 공백을 통해 생겨나게 되는 새로운 인연이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로 자리잡게 된다면 상실에의 슬픔은 중요하지 않다.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련다. 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의미에게 자리를 내어주겠다. 사람은 필요 당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결국은 자기 스스로도 필요에 의해 사람을 찾게 되니까. 그래서 상실에의 유예 기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내 스스로에게 구속되기 싫고, 그들에게 구속을 강요하기 싫어서이다. 슬픔은 일시적이지만, 구속에 의한 고통은 그 관계의 지속시간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상실에의 유예 기간 동안. 모두가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나도, 너도. 그 동안, 정말 내게 필요한 사람과 정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으려는 속셈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잃고, 얻고'의 개념이 아닌 고차원적인 정신 영역에 있어서의 필요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하고 일방적인 속박은 벗어버리고 상호작용을 추구해보려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때론 진지함으로 다가가기도 하고, 때론 장난스럽게 때론 무뚝뚝하게 다가가기도 하겠지만. 난 그 과정상에 있어서의 기술을 중요시하고 사람을 가까이 혹은 멀리하려는 사람보단, 어리숙함을 이해해주고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의미있게 받아들이겠다는 이야기이고. 동시에 내면을 들켜버린 나로서는 내 스스로를 좀더 맑게 정화시켜보려는 것이다. 진실되지 않은 의미와 애정, 관계에의 부정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얼마나 한정적인지 느껴져서...

 

일단은 상실에의 유예 기간을 지내고 있다.

 

공감 버튼을 눌러주세요.
작은 흔적을 남겨주세요 :)
블로거에게 큰 보람을 주는
'돈 안드는 구독료'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