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하여-

Thought 2007. 10. 24. 00:06

이틀여 흉부외과 콜을 맡아주면서, 내 원래 담당 과인 소아과를 비롯해 산부인과, 정신과까지 총 4개과의 당직콜을 맡게 되는 멀티플레이를 하게 되었는데.

오늘따라 갑자기 평소에는 없던 응급실 환자도 오고, 각 과별로 병동에서의 콜들이 계속 연이어 오면서, 여러 일들이 겹치게 되는 짜증나는 상황이 생기게 되었다.
내 몸이 둘도 아닌데, 이리저리 계속 Push는 들어오고, 죽도록 일해도 계속 쌓여만 가는 일들. 갑작스레 전화걸어 위로해달라고, 힘이 되어달라고 투정부릴 사람도 없는 내 신세- 밥도 못 챙겨먹은데다가 저녁 늦게까지 쉬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일하게 되어 기분도 꿀꿀하던 차에.. 예상치도 못하게 흉부외과 환자와 보호자분으로 부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바로 '사랑'에 대한 것인데..

Pneumothorax 로 입원하신 80세 가까이 되신 환자분. 안그래도 워낙 마르고 기력이 없으시던 분이셨는데, 오늘따라 기력이 더욱 없으시고 SaO2 까지 계속 떨어지고.. 교수님께 Notify 했더니, 바로 병원에 오시겠다고 하시며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하고 환자 보호자분께 임종을 맞으시게 될 가능성에 대하여 설명해달라고 말씀하시다.
혹시라도 환자께서 임종 관련하여 설명드리려고 한다는 것을 아시게 되는 건 아닐까, 혹시라도 보호자분께서 너무 상심하고 슬퍼하시는 건 아닐까, 어떻게 말씀드리면 좋을지 이런저런 생각들로 한참을 고민하다가. 보호자분을 조용히 병실 밖으로 모시고 나와서 이와 관련하여 말씀을 나누었다. 보호자분께서는 굳이 이런 이야기 안하셔도 괜찮다고 - 이미 환자분도, 가족들도, 모두 각오하고 있다고 -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차분하게 말씀하시면서,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 넣어둔 신문지 조각을 하나 보여주셨다.
기도가 많이 좁아져있는데다가 얼마 전부터는 목소리 내기도 많이 어려워지셔서 신문지에다 하고 싶은 말씀을 적어서 보여주시곤 하셨고, 몇 일전에는 담당 간호사가 '이제 죽을 날이 얼마 안남았다는 걸 안다' 고 환자분께서 써주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터라. 나는 그런 비슷한 내용이 적혀있을 걸로 예상하고 받아보았는데,

'당신 앞에서 죽는다면 난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하오. 사랑합니다.'

그 순간 너무 감동스러워서 눈물이 나려던 걸 겨우겨우 참아냈다. 그 이후로는 나도 이런 사랑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고, 자기 전이 되어서는 나도 그런 사랑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죽음 앞에서 그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이 되는 게 진짜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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